요가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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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명상을 통해서 최고의 경지, 이른바 삼매라는 경지에 이르러,
자기 마음의 본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명상은 눈을 감고 앉아서만 하는것이 아니며, 주위의 사물과 현상을 다각적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일부만이 아닌 전체를 느꺼보라는 것이 생활명상이다.
자신의 편견(偏見)과 편식(偏食), 편향(偏向)으로 인하여 치우쳐진 심신을 매일의 일과에서 반대적인 사고와 몸짓을 통하여 해소시키는 것이며, 하나의 작용된 마음에서부터 그 가역적인 사고의 세계를 연습하여 마음을 확장시켜야 한다. 그것이 감정과 의식의 업(業·Karma)을 소멸시키는 것이며 생활속에서 내면으로 깊어지는 명상이 된다.

요가 명상법

  • 요가 명상의 단계
  • 제감(制感 : Prathyahara)
    감각기관에 의한 감정의 흐름을 제어하려는 것으로써 자기방어와 적응을 위한 외부적인 느낌을 차단하고 내면의 세계로 전환(轉換)시키고 감각기관과 신체의 일부에 의식을 집중하는 방법을 취한다.

    응념(凝念 : Dharana)
    구심적(求心的)인 사고(思考)를 말하는 정신의 집중이다. 사색의 대상을 줄이고 단순한 것에 정신을 집중한다. 응념을 통해 제감이 되고 제감을 통해 응념이 되어진다. 어떤 것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그것의 전체와 순수성을 파악한다면 그것과 하나가 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정려(靜慮 : Dhyana)
    원심적(遠心的)인 사고(思考)를 뜻하는 명상을 말한다. 어떠한 대상에 몰입되어 있거나 자기 의식세계에 들어 있음을 의미하며 응념으로 채택한 대상을 시간적으로 길게, 폭넓게 고찰하여 생각의 흐름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정려 즉 마음의 시야를 넓히는 것 때문에 하나의 대상에 대한 정신의 집중이 약화되면 안 된다. 응념이 단일한 것에 집중되어있는 생각이라면 정려는 생각과 생각사이의 공백이다. 응념이 수직이라면 정려는 수평이고, 응념이 구심적이면 정려는 원심적이며, 응념이 좁혀지려는 것이라면 정려는 넓게 적용하려는 것이다.

    삼매(三昧 : Samadhi)
    자의식과 우주의식이 육체에서 혼연일체(渾然一體)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를 의미하며 언어(言語)로 표현할 수 없는 자기만의 경험세계이다.

  • 명상(冥想)의 의미
  • 명상의 기원은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의 문명이 도래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여러 세대를 지나는 동안 그 본질이 변하지 않고 후세에 전해졌다. 명상의 간결한 기본 틀 안에는 모든 철학과 종교적인 원칙을 망라하는 근본적인 가르침과 접근방법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본질이 변하지 않고 전해질 수 있었다. 명상이란 모든 두려움, 욕망, 갈망,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것을 전하는 유일선이다.
    어떤 사람들은 명상이라 하면 무조건 일상생활로부터 도망쳐 깊은 산속에 숨어 들어가 수행하는 것쯤을 명상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삶에 있어 늘 무언가 부족하며, 공허하고, 스트레스, 분노, 좌절, 의기소침한 기분 등이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명상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만족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행복, 평화, 만족을 얻기 위해서는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제시하는 것과는 무언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막연히 깨닫게 되었다. 이들은 명상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지나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기술발달로 인한 급속한 사회변화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렇듯 명상은 해방감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명상을 하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내면에 힘과 에너지, 평화, 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일단 깨닫고 나면 언제든 활용할 수 있다. 이런 힘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 주고, 격려해 주며, 힘을 주고,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우리는 이런 내면의 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마치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 온 후에 벽에 있는 스위치의 용도가 뭔지 몰라서 불을 켜지 못해 캄캄하게 생활하는 시골 사람과 같은 것이다. 불을 켜기 위해 필요한 전기와 전등은 이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내재해 있다. 우리는 전원을 연결하여 켜기만 하면 된다. 이런 지혜의 근원이 바로 자아(自我)이다.
    자아는 별개의 형태나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내재해 있다. 모든 사람은 자아가 있으며 자아는 독립적인 존재이다. 이러한 자아를 우주의식, 성령, 우주심, 모든 이해를 넘어서는 평화, 절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부처, 예수, 알라, 브라만, 신 등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름이나 방법은 다양하지만, 모든 삶에 널리 퍼져 있는 하나의 절대적인 본질이 있다.
    우리의 마음으로는 이 자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지식을 이용해 무한한 그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정의할 도리가 없다. 경험을 할 때에만 비로소 자아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오랫동안 명상을 하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직관력이 생기며,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본질을 느낄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평화가 찾아오고 연민, 기쁨, 이해심이 생기는 것이다. 요가는 곧잘 사람의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곤 한다. 호수 위에 생기는 물결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생각과 감정과 같은 것이다. 물결이 잔잔해지면 호수는 고요해지고, 우리는 바닥에 조용히 가라앉아 있는 소중한 보석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명상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으로 얻게 되는 교훈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양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들여다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요가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기 자신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요가에서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내면에서 평화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보았을 때,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자신의 마음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몰두했다가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거나, 지속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또한 하나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향해 움직일 수도 있고, 집중을 하고 고요하게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사람들은 평화를 갈구하면서도 내적인 요인을 찾기보다 약물, 술, 담배, 텔레비전, 과식, 지나친 수면, 일 등에 의존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욕망을 만들어내고, 이런 욕망으로 인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명상은 마음을 느긋하게 갖고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다. 요가의 여덟 단계 중 일곱 번째 단계가 마음과 신체를 완전하게 수련하는 라자요가이다. 명상(산스크리트어로는'디야나(Dhyana)??라고 부름)은 의식의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그 상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인도의 현인들은 명상을 할 때의 마음 상태를 기름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아무런 장애물도 없이 흘러가는 상태에 비유한다. 즉, 움직임은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여러 생각이나 욕망 등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는 의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뜻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명상이란 텅 빈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근본이자 모든 존재의 바탕인 맑은 의식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내면에 자아를 느낄 수 있으며, 그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아 불필요한 외적인 세계를 헤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마음이 고요해지면 축복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이 자연스러운 상태는 모든 사람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으로, 그동안 잘못된 행동과 생각으로 인해 가려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진정한 본성을 찾으려면 건강과 조화를 위한 타당한 법칙에 맞게 자신을 재정비하여 명상수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재정비하려면 생각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또한 명상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아야만 한다. 그동안 명상에 대한 많은 책과 각종 자료들이 있었지만 정작 명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잠을 자는 방법을 배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상을 하는 방법도 남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따뜻한 방에 있는 안락한 침대에 누워서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이 과연 잠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명상은 스스로 익히는 것이다. 단, 마음이 고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이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마음 상태를 갖기 위해서는 매일 수행을 해야 한다. 일단 자신의 마음에 집중한 후 잡념을 없애면 명상을 하기에 가장 좋은 상태가 되며,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도 명상에 들어갈 수 있다. 라자요가의 여섯 번째 단계인 '다라나(Dharana)??라고 하는 것으로 정신집중을 뜻한다. 현인들은 명상수행을 하기 전에 집중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항상 강조하여 설명한다. 명상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생활이 규칙적이지 못해 항상 의기소침해 있거나 피곤해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명상의 초기상태에서는 스스로를 이런 부정적인 상태에서 이끌어내는데 모든 노력을 쏟아야 한다. 삶의 방식에 변화를 주어 신경계가 차분해지도록 한 후, 명확하고 긍정적인 삶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게 되고 점점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다. 불필요한 것들을 치우기 시작하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가 살면서 방을 더럽힐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더럽힐 수 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마음속에 쌓여있는 두꺼운 먼지를 보지 못하다가, 그 먼지를 치우기 시작하면 의심이 생겨난다. 이 의심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속임수와 같은 것으로 수행을 하지 않고 더럽혀진 상태를 깨닫지 못했던 이전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현인들은 이러한 속임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현인들은 오히려 에너지를 배가해 명상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음식과 수면이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듯 명상 또한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현인들은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에너지를 모아, 그 에너지로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자아의 더 깊은 부분을 보고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는 명상의 약속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명상을 하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인식할 수 있게 되며, 완전하고 자연스러운 휴식, 청정, 축복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은 여러 원소들의 자연스런 배합(配合)과 조화(調和)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비율과 성향에 따라 형체와 성상들이 각기 다르게 된다. 인간(人間)의 모습도 이러한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변화의 과정과 환경에 적응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활동과 반사작용을 명령하는 대뇌와 자율신경 기능에 의해 생명(生命)의 유지를 위한 방위(防衛) 활동은 계속된다.
    이러한 일정하지 않는 구조에서 인간은 생리적,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경향을 겪고 있으며, 사회구조가 자꾸 복잡해지고, 심리구조 또한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흥분과 긴장의 시간이 많아지고 혼란해진 마음은 평정(平靜)을 잃고서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
    명상(冥想)은 과거의 반성(反省)을 통해 혼란의 요소를 지우며 순화(純化)된 정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안정된 심신을 바탕으로 유한(有限)한 인간에서 무한(無限)의 우주와 결합하여 자연과 나의 일치를 이루려는 것으로서 단순한 정신집중이나 일반적인 호흡의 차원이 아닌 우주의식으로의 확장이다.
    명상의 경험은 환상(幻想)이 아닌 고차원(高次元)적인 경지를 추구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열려진 마음으로 다각적(多角的)인 사고(思考)를 하여 생활패턴과 인간관계(人間關係)의 폭을 풍부(豊富)하게 한다.
    명상의 궁극적 목표는 삶의 가치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하는 힘, 즉 마음의 개방과 집중을 통하여 일상의 삶을 다시 발견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의 과정이 기쁘고 슬프며 두려움과 공포, 충격 그리고 좌절과 즐거움들의 연속이라면 명상(冥想)은 이를 능히 다스리고 통제하는 자기능력의 개발과정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는 그릇에는 어떤 것을 담기가 망설여진다.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그릇에 어떤 것이든 담고 싶듯이 명상 또한 마음의 자리를 비웠다가 새롭게 채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자신만의 시간이라는 그릇이다.
    명상은 환상이나 이상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함이 아닌 삶의 모든 면면을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 이를 피해가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힘을 얻는 기회를 갖게 한다. 또한 명상을 한다는 것은 자연과 우주에 담겨있는 보편의 진리를 찾아내어 현실에서 경험하고 기쁨으로 승화시켜 삶의 행복과 인간의 전인성(全人性)을 아름답게 발현하기 위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명상의 종류와 방법

  • 미간명상
  • 눈을 감고 미간(眉間)에 의식을 집중하여 주시한다. 눈을 감은 채 점차 눈동자를 움직여 미간을 바라본다. 미간을 제삼의 눈 또는 시바의 눈(Sivanetra)이라 한다.

  • 코끝명상
  • 눈을 반쯤 뜨고 코끝을 응시하며 의식을 하나로 집중시킨다.

  • 아침명상
  • 해가 떠오르기 전에 해변이나 숲과 들판을 걷거나, 깨어나는 자연에 동화되어 고요히 앉아 바람을 맞으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다.

  • 웃음명상
  • 건강과 상쾌함을 심신에 가득차게 할 수 있는 웃음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묘약이다. 소리 내어 웃는 웃음은 깊은 호흡이 되며, 안면에 가득한 미소는 하루를 풍성하게 한다.

  • 공간명상
  • 사물의 모양을 볼 때 그 재질을 보지 않고 그 끝선을 보아서 전체를 보고 그 윤곽(輪郭)으로 비물질적 차원인 그 모양만큼의 공간을 본다.

  • 회기(回氣)명상
  • 대상을 볼 때 자기에게서 기(氣)가 나가는 것으로 생각지 않고 대상으로부터 기가 들어오는 것으로 본다. 즉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그 자체를 보는 것이다.

기타 명상법

  • 석가(釋迦)의 명상법
  • 지법(止法, Samatha, 집중), 관법(灌法, Vipasana, 여러 가지의 꿰뚫어보기), 진공묘유(眞空妙有)와 육묘문(六妙門)을 가르쳤다.
    ① 위파사나(灌法, Vipasana) : 12연기(緣起)
    무명(無明) - 무지하고 어리석음.
    행(行) - 무지하고 어리석은 행위.
    명색(名色) - 이름만 있고 형상 없는 마음과 형체가 있는 물질.
    육처(六處) -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촉(觸) - 사물을 접촉하는 감각.
    수(受) - 외부로부터 받은 고락의 감각.
    애(愛) -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구함.
    취(取) -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취함.
    유(有) - 자기의 업(業).
    생(生) - 태어남.
    노사(老死) - 늙고 죽음.
    5온(五蘊) - 물질, 감각, 개념, 의지적 행동.
    - 순수의식(色受想行識)의 관찰을 위해 사념처(身受心法)를 관하는 것
    ② 사념처(四念處) 명상법 : 관(觀)하여 마음으로 보는 것. 관조하고 비추어 보는 대상으로 몸(身), 느낌(受), 마음의 움직임(心), 생각의 대상(意)이 있다. 반가부좌나 결가부좌 상태에서 호흡의 나오고 들어감을 관한다.
    아나파나사티(ana-吸, apana-呼, sati-집중)명상법 : 수식호흡. 매 순간 일어나는 산란심을 관찰의 대상으로 삼아 관해야 한다. 걷는 자세로 명상할 때는 걸음을 세밀히 관찰하며 걸을 때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관한다.
    ③ 육묘문(六妙門) : 숫자를 세면서(數息) 마시는 숨보다 토하는 숨을 길게 하는 것. 호흡(呼吸)이 숫자 하나이며 10까지 세고 난 후 다시 하나에서 시작해서 반복한다.
    수(隨) : 숨쉬기를 깊고(深), 길고(長), 세밀하고(細), 균일(均一)하게 함.
    지(止) : 숨의 조절.
    관(觀) : 집착된 편견을 제거.
    환(還) : 마음을 다시 돌이켜 봄.
    정(淨) : 심신의 정화.

  • 달마(達磨)의 명상법
  • 이입사행관(二入四行觀)

  • 원효(元曉, 617~686)의 명상법
  • 지법(止法, Samatha, 집중)과 관법(觀法, vipasana, 여러 가지의 꿰뚫어보기)의 융합이며 화쟁사상(和諍思想)이다. 서로 다른 성질이 서로 융합하면서도 하나로 획일화 하지 않는 사상으로 요가와 가장 가까운 불교사상이다.
    ① 개폐묘합(開閉妙合) : 열고 닫음의 묘한 화합
    ② 여탈묘합(與奪妙合) : 주는 일과 빼앗는 일의 묘한 화합
    ③ 입파묘합(立破妙合) : 만들어 세움과 파괴의 묘한 화합
    ④ 동이묘합(同異妙合) : 같고 다름의 묘한 화합

  • 공자(孔子)의 명상법
  • 배우고 실천하여 익히면 기쁘다.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

  • 맹자(孟子)의 명상법
  • 호연지기(浩然之氣). 부동심(不動心). 회시(回始)명상(의식확장 명상. 과거에 놓쳐버린 마음을 다시 찾는 것을 배우는 것)

  • 주자(朱子)의 명상법
  • 거경궁리(居敬窮理). 의식을 집중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함으로 궁극의 이치를 깨닫는 것

  • 노자(老子)의 명상법
  • 도덕경 56장. 천하의 모든 것들은 귀하므로 질 낮은 것으로부터 질 높은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 임제(臨濟 800~867)의 명상법
  • 사람의 내면에 부처가 있으므로 자기 내면을 주시하라. 화두선(話 : 스승이 제자에게 말로 간단한 단어를 주는 것. 頭 : 그 단어의 본성)

  •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500 B.C)의 명상법
  • '화가 나면 자비심을 내어 마찰시키라.', '아주 작은 일 일지라도 그 진행과정을 섬세하게 다각적으로 자각하는 것이 명상(冥想)이다.', "신(神)이여! 당신은 구원을 행할 수 있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잘못을 가려내고 진리를 깨우쳐야 함은 인간의 할 일입니다.", '현재의 고통은 구원의 길을 암시하는 신의 은총이다.'

  • 라즈니쉬(Osho, Rajneesh 1931~1990)의 명상법
  • 다이나믹(Dynamic) 명상 : 자신을 억압하고 진정시키는 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더 큰 욕구와 맺힘으로 남아 있게 되므로, 억압한 것을 표현하고 움직임으로 표출하여 맺힌 것을 풀려는 명상이다.
    10분간 호흡을 깊고 고르게 한 후, 다시 10분간은 복부를 조이면서 후-하는 소리를 내면서 반복적으로 위로 뛰어오르며 발뒤꿈치를 자극하고 성 센터를 각성시킨다. 그 후 10분간은 멈춘 모습으로 유지한다. 그리고 마지막 10분간은 감사와 축제의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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